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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겨울 나무

가벼워진 후 뼈와 살을 추려 간간히 입은 마른 손을 하늘로 뻗는다 미풍에 속삭였던 잎들의 어휘 입안 가득 풀어낸 동그란 바람 그리고 견디어 냈던 푸른 생명들의 기억 짙은 민트향의 겨울로 간다 파이프 올겐의 물기 없는 파장 마른 손을 힘겹게 하늘로 뻗는다    모두가 벗어 버리고 있는 순간 강은 이제부터 봄을 향해 흐르고 옛 이야기도 먼 훗날의 이야기도 아닌 이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오늘로 살아간다 당신으로부터 시작돼 내게로 오는 그저 꽃 피우는 사랑이 되랴 그저 다가 오는 그리움 되랴 그저 흐르는 강물이 되랴   안다고 하는 것 울타리 너머의 상실한 마음 만든 이의 손길을 읽을 수 있다면 깊숙한 손잡음의 떨림이 있다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림자처럼 밟히는 나를 빚어내나니 마른 손으로 춤추게 하나니 비로소 열리는 귀, 보이는 눈, 들리는 노래 힘줄 선 근육의 사이 사이로 가을을 이별하는 사이 사이로 당신을 숨쉬는 사이 사이로    부디 행복하세요. 할 수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데, 말하고 싶어도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데, 천개의 별이 뜨고 천개의 별이 지고 있답니다. 언덕 위 나무는 이제 앙상한 몸을 드러내었고 휑한 바람은 몇개 남지 않은 마지막 잎새를 흔들어대고 있네요. 부디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쓸쓸함을 이기려면 온 신경을 아래로 쏟아 내야 해요. 뿌리로 뻗어야 해요. 지난 봄의 꽃향기를 잊어야 해요. 가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풍성했던 초록의 기억을 묻어야 해요. 붉게 타올랐던 참을 수 없던 열정을 식혀야 해요. 그렇게 고요해져야 해요. 죽은 듯 숨조차 다듬어야 해요.     언덕 위 나무와 들풀의 손짓은 겨울의 깊은 호흡에 잠겨있어요. 누구도 노래하지 않고 춤추지 않는 날이 올 거에요. 찬 바람에 흰눈까지 온 대지를 덮을 거에요. 그러나 찬 눈을 꽃처럼 피어낼 나무가지들을 축복하려 해요. 그러니 부디 행복하셔야 해요. 모두 자신을 벗고 있는 와중에도 초라해지거나 춥지 않았으면 해요. 보이지 않지만 든든한 뿌리가 버티고 있으니까요. 봄으로 뻗어나가는 멈추지 않는 동력으로 동토의 찬 기운을 녹이는 봄의 전령으로 살아야 해요.     마지막 잡아본 손은 잎사귀를 다 떨군 앙상한 가지 같이 말라 있었어요. 나무의 마른가지처럼 그 손을 사랑하게 됐어요. 오랜 시간을 견디어내며 만들어진 사랑의 자국이라 명명된 그 손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에요.   창밖은 눈, 이제 가을은 옷깃을 여미고 겨울의 깊은 숲속으로 걸어 갔어요. 두 팔을 벌리고 맞이하는 나무들 사이로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사라져 갔어요. 내 발도 걷고 있네요. 깊은 숲속으로, 보이지 않는 오두막으로, 두 팔 벌리고 맞이하는 당신에게로, 끝이 없는 하얀 발자국 남기며 사라지고 있어요. 숲 사이로 들려오는 겨울나무 소리. 당신을 숨쉬는 사이사이로….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겨울 나무 겨울나무 소리 겨울 나무 나무들 사이

2023-11-27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지금은 고요해야 할 때

지금은   고요해야 할 때 시킨다 하여   고요해 지겠는가 내 안에 갇혀   죽어가는 것이려니 뼛속 깊이 부는   바람이 되어 어찌 고요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고요해야 한다면 그대 곁에 맴돌다   토해내는 숨 혀를 문   침묵이어야 하리 빛나던 별빛 사라진 후 지금은 고요해야 할 때 참으로 고요해 지려 함은 제자리 돌아오는   그림자처럼   그대 뒤에 숨어서   하루가 지고 돌아온 길은   숲이 되어가는데 불그레 얼굴 내미는   마른 나무들 사이로 곁을 스치며 뒤돌아보는   바람의 얼굴 들을 수도 들리지도 않는   적막 속으로 푸른 하늘과 푸른 강이   하나로 만나 경계가 지워지는   풍경 속으로   난 아직   그대를 보내지 않아요 미동 없는 나무처럼   미물같이 그대 곁에 서있는   고요가 차마 서러워       그 해 가을 앞산은 유난히 붉어 고요할 틈이 없었다. 새벽부터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산을 올랐고, 산은 사람들의 그림자에 덮여 어둠에 시달려야 했다. 단풍이 절정이어서 사람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즈음, 그 산을 맴 돌던 고요는 푸른 하늘 위로 떠올라 발갛게 달아오른 산허리를 감고 깊은 눈으로 산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누가 시킨다 하여 고요해지겠는가? 스스로 산 입경에 울타리를 치고 산 아래와 위를 가르는 뼛속 깊은 바람이 되어, 기우는 숲이 되어가는 자신의 긴 그림자에 하루가 저물어 가고,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목엔 마른 나뭇가지들, 손을 조금만 흔들어도 경계가 무너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산을 돌아 마을 깊숙히 지는 하루. 살며시 고개 드는 노을에 고요가 내려 앉았다. 음표의 뒷모습까지 부를 줄 알았던 나뭇잎들의 유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곁을 스치는 바람의 얼굴은 그대의 얼굴이었다. 푸르샨블루 하늘에 별이 뜨면 푸른 강이 일어나 하늘을 만나고 미동처럼 서있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안개처럼 내리는 고요. 들을 수도 들릴 수도 없는, 내 안으로 들어와 남겨놓은 시 한 소절. 미물같이 그대 곁에 서있는 고요.     맞아. 그것은 굳이 기억해내지 않아도 코끝이 찡하게 다가오는 것이었지. 세상은 모두 잠들어 아마 모를 거야. 그렇게 깊은 것인 줄, 그렇게 마음 깊이 새겨진 화석인 줄. 몰라도 나의 몸 속 세포들이 고요함을 인지할 때면 자석같이 살아나 때도 없이 당겨지는 힘. 막을 수 없지. 멈출 수 없지. 고요 속에 잠겨가는 먼산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지. 그림자처럼 나무에 비스듬히 기대어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는 견고한 그리움 처럼…. 불그레 얼굴 내미는 바람의 얼굴처럼…. 차마 서러운 고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하늘 위로 나무들 사이 발자국 소리

2021-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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